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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세상

'아줌마'라는 호칭, 이제 사건을 부르게 된다

by 석아산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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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라는 호칭, 이제 사건을 부르게 된다
'아줌마'라는 호칭, 이제 사건을 부르게 된다

'아줌마'라는 말은, 이제는 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왜냐. '아줌마'라는 호칭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 때문이죠.

 

보통 결혼한, 연배가 다소 있는 여성에 대한 호칭으로 이 '아줌마'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요. 일단 이 '아줌마'라는 호칭이 가지고 있는 '기저 정보'들이 너무나 많죠.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or' 개념으로 이 '아줌마'라는 호칭을 씁니다. 그러니까 연배가 있다거나, 또는 결혼을 했으면 '아줌마'를 쓰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and'의 교집합 개념으로 듣게 되죠. 즉 연배가 있어 보여서 '아줌마'라고 불렀는데, 듣는 사람이 실제 연배가 있는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기분이 나쁘겠죠.

또는 '나는 나이가 많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자의식과 '아줌마'라는 호칭이 충돌을 일으켜 또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런 식으로 이 호칭은 날이 갈수록 사회의 변화, 인식의 변화와 맞물려 점점 더 충돌의 가능성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트리비아를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 '아줌마'라는 단어의 어원을 '아주머니', 그리고 이 아주머니와의 음운적 유사성 때문에 '아기 주머니'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아줌마'의 어원을 '아기 주머니'로 간주하는 것은 '민간 어원'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적인 합리성은 없다는 거죠.

훈몽자회라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사전에는 '아줌마'라는 단어가 '아자머니(자는 아래 아)'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아자머니'라고 불렀고, 아기 주머니와는 상관이 없죠.

 

자, 그럼 이렇게 요새 칼부림까지 불러오는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한 소식을 봅시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지난달에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 칼부림 사건까지 일으켰습니다.

다른 승객이 휴대폰 소리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면서 아줌마라고 불렀다는 이유였습니다. 휘두른 회칼에 세 명이 다쳤다네요.

이 사람 어떻게 가방에 회칼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일단 차치하고, 지난 18일 열린 재판에서 여성은 자신의 죗값을 부인했습니다.

 

이 사람은 "소리를 줄여 달라고 하길래 '아줌마 아닌데요'라고 얘기했다"며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는데요, 해당 여성의 나이는 35세입니다.

 

'아줌마'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의 멸칭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나이 들고 부끄럼이 없다는 뜻으로 의미가 하락하면서, 이 말을 들으면 인격 비하의 의미로까지 받아들입니다.

비단 한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본 삿포로에서도 아줌마라 불렀다는 이유로 버스 안에서 남자 중학생을 폭행한 20대가 있습니다.

인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고요.

 

‘아줌마’는 우리 사회의 멸칭(蔑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나이 들고, 부끄러움 없는, 그래서 수준 미달이라는 인격 비하의 의미로까지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비단 한국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아줌마라 불렀다는 이유로 삿포로의 어느 버스 안에서 남자 중학생을 폭행한 20대 일본 여성,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시장 골목에서 소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때린 40대 인도 여성의 사연이 해외 토픽으로 소개됐다. 물론 저마다 ‘발작 버튼’은 상이할 것이나 도화선은 한결같다. “아줌마”는 왜 주먹을 부르는 말이 됐는가.

 

아줌마 여부 결정 요소 여론조사
아줌마 여부 결정 요소 여론조사

◇나 아줌마 아닌데요… 60대도 발끈

여론 조사 결과, '아줌마 호칭'이 기분나쁘냐는 질문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건 30대(64%), 40대(60%)였습니다. 50대부터는 본인을 ‘아줌마’로 인식하는 비율이 더 높아졌으나, 여전히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50대 응답자 500명 중 223명, 60대 응답자 500명 중 161명이었습니다. 광주에 사는 69세 여성, 경남에 사는 68세 여성 등 법적 노인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기분이 나쁜 이유로는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31%)가 가장 높았습니다.

 

저 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외모'가 '아줌마'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가장 높았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 젊어 보이느냐, 아니냐가 호칭을 판가름한다는 것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아줌마(아주머니)는 '남남끼리에서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사실은 외모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죠. 

 

 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관대한 경우가 많기에 '남이 바라보는 나'와 격차가 발생하면 발끈하게 된다"며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특히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호칭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응답자의 69%는 "호칭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달라진 생애 주기, 호칭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생체 나이는 갈수록 젊어지고 있습니다.

평균 초혼 연령도 매년 늦춰지고 있죠. 20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 통념상 서른 살이면 얼추 결혼도 하고 애도 있겠거니~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는데요

 

이번 설문 조사에서 '아줌마'라 불러도 되는 나이로는 '40세 이상'(30%)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30세 이상 응답률은 3%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30대 나이에서는 저출산에 만혼이다 보니 늙은 것이 아닌 셈이 되어 버렸죠.

이렇게 아줌마가 내포한 이미지는 지금 사실상 '할머니'가 되어 버렸는데 '아줌마'의 함의는 그대로... 그렇게 호칭의 지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국립국어원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에선 아줌마의 정의를 수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에서 '남남끼리에서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설명입니다.

 

◇호칭에서 성별 흔적 지워라

사회가 달라지면서 호칭에서 발생하는 특정 뉘앙스를 피해 호칭을 바꾸는 노력도 함께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야쿠르트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야쿠르트 아줌마'를 '프레시 매니저'로 변경했습니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스튜어디스(여자)와 스튜어트(남자)로 따로 불려온 기내 승무원 명칭을 통일해 ‘플라이트 어텐던트(Flight Attendant)’로 바꿨습니다.

 

호칭에서 성별을 제거한 '성 중립'의 시대로 점진적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려주는 사례이죠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2021년 회장직을 뜻하는 체어맨(Chairman) 명칭에서 '맨'을 떼어내 '체어'로 바꿨다네요. 

기업에서는 아예 직급과 호칭을 없애는 경우도 있는데요. 하지만 이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저항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입니다.

◇호칭 인플레이션… “저기요”가 편해요

요새는 선생님, 사장님, 이모님, 언니... 등 아줌마나 아저씨라는 호칭을 대신하는 여러 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다소의 저항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것도 사실은 존칭인데, 이것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그래서 지난해 10월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이 MZ세대 아르바이트 직원 16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인상적입니다. 가장 듣기 좋은 호칭으로 '저기요'(36.3%)가 꼽힌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이 2020년 펴낸 언어 예절 안내서(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는 '저기요'를 사회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편안하게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라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장 무난한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이랬다면 지하철 칼부림 소동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저기요, 휴대폰 소리 좀 줄여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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