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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책리뷰)

교황님이 길거리서 애를 낳았다!...그리고 베네딕토 16세 충격 반전

by 석아산 202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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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이 길거리서 애를 낳았다!...그리고 베네딕토 16세 충격 반전

명예 교황이셨던 베네딕토 16세가 얼마 전 선종하셨죠.

 

교황직이라는 건 가톨릭 세계에서는 엄청난 권위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온 세계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도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어떠했겠습니까.

 

교황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중세 시대에는 사람들의 가십을 넘어, 생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 어느 날, 그런 교황이 저잣거리에서 갑자기 애를 낳았다는 괴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엄청난 파장을 낳았겠죠.

 

바로 이 사건을 파헤친 책이 하나 있습니다. 바다출판사의 <교황 연대기>라는 책인데요. 그 책의 내용을 소개해 봅니다.

 

 

교황청의 역사에서 아직까지 풀리지 못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여성이 신부로 서품받고 주교 자리에 오른 것도 모자라 교황까지 올랐다는 믿지 못할 기록들입니다.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던 1200년 전의 일입니다. 여교황 '요안나'가 그 주인공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저 위의 위 그림은 교황 '요안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포프 존'의 포스터이고, 그 밑의 사진은 1474년 목판화로 교황 존이 아이를 낳는 모습을 묘사한 판화입니다.

 

서기 857년. 교황 존이 베드로 성당에서 라테라노 궁으로 행차하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말 위에서 복통을 느낀 그가 소리를 지릅니다. 그가 말 아래로 떨어지고, 사타구니 사이로 피가 쏟아져 피가 솟아 오릅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아기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경악을 금치 못했지요. 교황이 사실은 여자였고, 그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황 존은 요안나라는 여성이었고,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은 그가 남성 행세를 하여 가톨릭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문에 교황청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 이후부터 가톨릭에서는 교황 즉위에 사용할 의자 '세디아 스테코라리아(sedia stercoraria)'를 만듭니다.

마치 변기처럼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의자인데요, 여기에서 교황의 '고환'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하위 성직자가 교황 후보자의 고환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하베트 듀오스 테스티쿨로스 에트 베네 펜덴테스" 

우리말로 옮기면, "그분은 두 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제대로 늘어져 있노라!"

 

 

그런데 앞서 말한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우선 여교황 요안나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연대기에 나왓던 시기에는 엄연히 다른 남자 교황들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대 수도사인 마르티니가 1265년 서술한 '교황과 황제 연대기'에는 여교황 요안나가 855년과 857년 재위했다고 되어 있지만, 이 시기에는 레오 4세와 베네딕토 3세가 버젓이 통치하고 있었음이 교황청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이러한 객관적인 자료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람들은 이 여교황 요한나의 진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관련 문헌도 여럿 남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르티니의 연대기가 대표적이지요. 교황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주제 때문이었는지 필사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이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여교황의 아들이 살아서 주교가 되었다거나 여교황 요한나가 죽지 않고 살아 도망쳐 한 수도원에 살고 있다는 등 변형된 버전이 여기저기 퍼졌다고도 합니다.

 

장 드 메일리라는 도미니코회 수도자가 쓴 '보편적인 메츠 이야기'도 대표적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교황이 즉위할 때 사용되었던 변기 모양의 의자 '세디아 스테르코라리아'도 실존해 전해지는 탓에 이 전설에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였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이 여교황 이야기를 무기삼아 가톨릭을 정면 비판하면서 공세를 강화했지요. 대표 인물이 현 체코지방 출신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였습니다. 여교황 '가짜뉴스'가 진실로 굳어지고 말게 된 건 그의 역할이 큽니다.

 

이렇듯 여교황 이야기 그 자체는 거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전혀 뜬금없지는 않은 게, 모티브가 된 사건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청 수뇌부를 뒤흔든 여성의 이야기이죠. 904년 교황 세르지오 3세 시절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도덕적이어야 할 교황에게는 애인이 있었지요. 귀족 여성 마로치아였습니다. (당시 가톨릭 종교인들은 애인을 여럿 둔 경우도 많았다네요 ㅠㅠ)

 

마로치아는 당시 로마 교황청 유력 인사 여럿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입김으로 여러 인물들을 교황 자리에 올렸습니다. 단적인 예로 교황 레오 6세는 마로치아와 성적인 관계를 맺고 교황에 올랐지만, 다른 이성과 또 다른 관계를 맺다가 마로치아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마로치아는 레오 6세를 가둬 교살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마로치아가 지배하는 교황청의 상황을 빗대어 창부정치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성스러워야 할 교황청이 섹스와 살인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니, 당대의 교황청이 얼마나 타락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을 교황청에 '여교황이 있다'고 말했을 정도였는데, 이 같은 정치 투쟁의 신화가 여교황 요한나 신화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나옵니다.

 

여교황 요안나의 이야기는 현대사회의 우리에가 많은 화두를 던집니다.

일단 여성 신부의 가능성에 대해서입니다. 현대 여성들은 이 같은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결실을 본 사건도 있었죠. 바로 2002년 6월, 로물로 안토니오 브라스치 주교와 페르디난트 레겔스베르거 주교가 7명의 여성을 로마 가톨릭 사제로 서품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헝가리 다뉴브에서 서품이 이뤄졌기에, 이들을 '다뉴브 세븐'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이들을 즉각 파문했습니다. 파문을 주도한 인물이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그는 바로 후에 세계에서 베네딕토16세가 불리게 될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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