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직관펌프', 대니얼 데닛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어느 날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다.
그들은 초고도의 문명을 자랑한다.
그들이, 자신의 최고 지성과 지구별의 최고 지성이 1대 1로 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만약 지면 지구는 그들 것이다.
자, 지구별 대표로 누구를 보내야 할까?
나는 이 대니얼 데닛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련다.
대니얼 데닛은, ‘생각에 대한 생각’, 즉 ‘메타-생각’ 연구의 대가이다.
그는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단순히 추상적인 철학적 논변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생물학과 신경과학에 대해서도 아주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의식이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주 철저하게 논증한다.
그 뿐이 아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유사성과 차이점, 자유의지의 문제, 종교의 발생 등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도 여러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매우 설득력 있게 논구한다.
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지성의 소유자인지를 구구절절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저 그가 대단한 지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직관펌프’를 들여다보자.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생각 도구를 제시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들에 대하여, 각종 예를 통하여(아! 그가 제시한 오류들을 살펴보면, 굴드나 촘스키 같은 유명인사도 별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설명한다.
자, 그러니 생각하는 것, 생각에 대한 생각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더불어 인문학도, 나아가 학자, 학도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생각의 스위스 나이프’, 그것도 자세한 매뉴얼이 담긴 만능 도구와 같다.
한마디로 이 책은 ‘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 ‘세련된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책인 것이다.
자, 이제 대니얼 데닛이 외계인을 물리쳤다.
의기양양하게 이기고 돌아온 그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
“아, 데닛 선생님, 당신이 외계인 아니었던가요?”
*기억에 남는 구절
발판 놓기: 사다리 하나만 있으면 지붕을 이고 집을 칠하고 굴뚝을 청소할 수 있다. 사다리를 옆으로 옮겨 올라갔다 내려오고 또 옆으로 옮겨 올라갔다 내려오고 하면서 한 번에 조금씩 작업하면 된다. 하지만 집 둘레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튼튼한 발판을 애초에 시간을 좀 들여서 만들어두면 결과적으로 일이 훨씬 쉬워진다. 이 책에서 가장 귀중한 생각도구 몇 가지는, (제자리에 설치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일일이 사다리를 옮기지 않고도 여러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발판 놓기의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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