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참으로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4학년 때 그분의 "문예사조사"라는 수업을 들었는데요, 그때 이 오르테가 이 가세트를 극찬하시는 모습을 보고 꼭 읽어보리라고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번역본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돈키호테의 완역본을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돈키호테는 정말 놀라운 작품입니다. 기사도 소설의 전통을 완전히 전복하는 최초의 "현대적"이라 부를 만한 소설이면서, 또한 인간의 보편적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스페인 사람이지만, 달리나 피카소와 같은 광기와 열정 넘치는 스페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북유럽적인 명료성을 강조하는 평론가이죠. 그는 거대한 열정만으로는 예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돈키호테를 아주 희극적인 인물로만 생각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엉뚱한 행동과 무모함, 그것을 조롱하고는 하죠.
하지만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 돈키호테에서 일종의 영웅성을 봅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게 있어서, 영웅이란 자신이 믿는 의지를 향해 한치의 타협도 보이지 않는 인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자신, 다른 인물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이 되려는 의지를 발휘하는 사람만이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의 개념과 많이 다르죠. 우리는 영웅을, 전투를 잘해서 나라를 구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런 영웅성을 개인적 차원에서 새로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문학작품이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고 말합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 말을 듣고 돈키호테를 다시 읽으면, 이 작품이 사뭇 다른 광채를 띄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어쨌든 돈키호테는,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진짜 큰 꿈을 꾸는 사람들, 보통 이러한 무모함을 품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그들은 타인에게 두려운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마치 반 고흐처럼 말이죠.
이상입니다. 이 책은 제가 앞으로도 옆에 두고, 두고두고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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