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운 책읽기(책리뷰)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은 왜 폭발적 인기를 가지고 있나

by 석아산 2022. 6. 9.
반응형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것을 고민해왔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해피엔딩에 목말라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 서른이 넘은 한 사내가 자신의 인생을 '부끄럼 많은 한 생애'라 부르고,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피폐한 모습으로 끝나는 이러한 소설을 사람들이 집어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가 유독 경쟁과 서열 중심의 사회인 것은 많은 분이 동의하실 거라 봅니다. 유교적 본질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는, 모난 사람은 정을 맞는 사회입니다. 유교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것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어떠십니까. 예전 제 지도교수는 이 말을 달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 너무나 답답하지 않습니까?

드라마에서도 이런 말이 많이 나오잖습니까. '도대체 나다운 게 뭔데!'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너다워야 한다'고 강요하기 때문에 이런 대사가 많이 나오는 것일 겝니다.

 

우리는 사실 이런 유교적 보편 도덕이 있다는 전제 하에,  다수가 인정하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불온한 사람'이라고 매도합니다. 뭐, 옛날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경향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인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게 정답이라고 이야기해 왔는데, 혹시 그게 아닌 것은 아닐까? 행복이란 것이,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집 사고, 좋은 차 타며 좋은 배우자와 좋은.... 그게 정답일까?

 

만약 그런 것만이 인생의 정답이라면, 나는 '인간'이라는 기준에 미달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인간실격'이 아닐까?

직접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무의식은 늘 이런 자괴감을 묻어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다시 봅시다.

'인간실격'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을 제대로 두드리는 단어입니다. 이 현대 사회에서, 공허한 자아의 울림이 반향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 그 곳에서 자신은 인간으로서 실격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목을 보고 덜컥 이 책을 집어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또한번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 갈깁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부적응자 정도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뛰어넘는, 미치광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작가 자신을 고대로 빼닮은 소설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 때문에  광대짓을 하고, 그 광대짓으로 여자에게 동정심을 얻고, 그렇게 사귄 여성과 바다에 가 동반자살을 하지만 자신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는 넙치를 닮은 인간에게 모욕과 굴욕을 당해도, 그 넙치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변명을 대며 비굴하게 도망쳐 나옵니다.

그리고 모르핀에 빠지고, 자살할 생각만 하게 되죠.

이렇듯 이 '인간실격'이란 제목은, 은유나 상징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최소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어떠한 위로도 얻지 못하고(그렇습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어떤 책이 우리를 위로해 주길 바랍니다.), 주인공에 대한 날선 비판을 기도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저는 묘한 번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저 사람에게 무언가 조언을 하거나, 욕을 할 자격이 있을까? 만약 저런이가 내 옆에 있다면, 나는 저이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할까?

아니, 나는 저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판단하고 있지는 않나?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곳에 있는 사람을, 우리는 너무 쉬이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이럴 때 우리의 판단은 결국 폭력인 것은 아닐까?

저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역설적으로 주인공에게, 나아가 작가에게 감정 몰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렇게 기묘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내면의 기이한 그림자를 외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번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돌고 돌아,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참으로 묘한 역설의 작품.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에 대해 낙담의 한숨을 쉬다 못해, 자신의 내면을 오열하며 열어보게 하는 작품, 바로 '인간실격'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