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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책리뷰)

[책 리뷰] 랠프 월도 에머슨, '자기 신뢰'

by 석아산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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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구절을 보시죠.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어떤 존경받는 조언자가 교회의 오래된 교리들을 무조건 따르도록 강권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순전히 내면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할진대, 그 오랜 전통이 아무리 신성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런 충동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이고, 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니야." 조언자가 말했다.
"나는 내 충동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충동 때문에 내가 악마의 자식이 된다면, 나는 악마로 살아가겠습니다."

지금 보아도 당찬, 어떻게 보면 섬뜩할 수도 있는,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 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입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기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질에 어긋나게 사는 것은 뭐든 잘못이라고 본 것이지요.

 

자, 이렇게 보면, 랠프 월드 에머슨의 '자기 신뢰'를, '네 멋대로 살아라' 정도의 방종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자기 신뢰'는, 높은 경지의 사색을 바탕으로 한 '내공'이 갖추어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는 일단 자기 신뢰를 위해서는 온갖 위선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남의 시선 때문에 기부를 하는 행위는 자기를 속이는 짓입니다. 그런 행위는 결국 자신을 비굴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지,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것이 위대함과 평범함을 가르는 주된 잣대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남의 기대(주로 부모님)에 따라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남의 기대로 인해 벌인 행동은, 결국 뿌리 깊은 후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불안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염두에 두게 됩니다.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지요.

 

그러나 온갖 고통의 길이 노정되어 있음을 직감하더라도, 자신이 진정 하는 것을 위해 어떤 다른 사람의 기대도 벗어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대단한 용기를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에머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구절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갈 명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여론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위인은 군중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독립적인 고독을 지키면서도 아주 품위 있는 생활을 해나간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요.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은, 그것도 최고의 정신적 수행으로 인하여 이런 결론을 얻은 사람은,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항상 고독 속에서도 고요하게,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업신 여겨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한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가진 허영과 거짓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을 자연히 멀리하게 되기 때문에, 더이상 정신이 오염되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독의 순기능이겠죠.

 

또한 그는 대중영합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는 일종의 허세로서, 거짓말을 양산하는 가장 그릇된 태도입니다. 

이는 각 분야에 각종 사기꾼이 들끓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럴 듯한 말과 수완으로 결국 자기 배만 불리는 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것에 속는 사람 역시... 자기 신뢰가 없기 때문에 남의 말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태도는 절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의 위대한 가르침 중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버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뜻밖이죠?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당신은 왜 자꾸만 어깨너머 뒤쪽을 돌아다보는가? 왜 기억이라는 시체를 무겁게 끌고 다니는가?
당신이 이런저런 공공장소에서 했던 말들과 모순되지 않기 위해? 당신이 모순되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치자.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순전히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서조차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천 개의 눈을 가진 현재로 과거를 끌어내 재판을 받게 하고 언제나 새로운 날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의 법칙이다.

 

이것은,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류를 저지르고 살아갑니까. 하지만 어떤 때 우리는 과거의 한 말을 단지 '번복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기에' 그 오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에머슨의 말처럼, 위대한 영혼은 일관성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말에 노엄 촘스키라는 미국의 위대한 언어학자가 떠오릅니다. 그의 초기 연구와 후기 연구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촘스키를 향해, '이론이 일관성이 없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이론이라는 것은, 사실 발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어떠한 오류가 있다면 그것을 시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다른 이론을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촘스키는 이것을 알았고, 학자로서 아주 겸손하게 자신의 오류를 시정해 나갔지요. 

이렇듯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압력으로 인하여, 진리에 대한 겸손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봐서, 요컨대 그는 무한한 자기 신뢰,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강한 힘을 갖출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무한한 자기 긍정은 오히려 방종을 불러 오지 않을까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러한 방종의 독소를 제거하는 방법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에 있는 근원적인 성령을 따라서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성령이라는 것은, 이미 내면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에머슨의 철학은 불립문자 견성성불을 강조하는 선종을 닮은 면이 있습니다.

 

이렇듯 자기 신뢰를 가진 인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절대적인 자기 확신을 가진 인물', 즉 자만심에 사로잡힌 거만한 인물의 정반대에 있습니다. 그의 말을 한번 더 보죠.

 

진리는 공기 중에 떠다닌다. 가장 감수성 강한 두뇌는 그것을 먼저 선언할 것이고 그러면 잠시 뒤에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받아 선언한다. 그래서 감수성 강한 여인들은 다가오는 시간의 가장 좋은 지표다. 또 시대정신이 강하게 스며
든 위대한 사람도 감수성이 강하다. 그는 빛에 반응하는 요오드처럼 신경질적이고 섬세하다.  그의 정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올곧은 이유는 아주 정밀하게 평형을 유지하는 바늘만이 잡아낼 수 있는 미세한 진동도 잡아내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있어서 '자기 신뢰'를 가지려면, 매우 섬세하고 여린 영혼이 필요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렵죠? 역시 위대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사색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또 치열하게 수양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양의 첫 발이, 바로 이러한 좋은 책을 읽는 것이겠지요.

자, 이상으로 포스팅을 마칩니다. 석아산이었습니다.

 

아차, 마지막 한 마디.

내가 어딜 가든 나의 거인은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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