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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세상

"위령비 참배"로 돌아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by 석아산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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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G7 회의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립니다.

히로시마는 1945년 원자폭탄을 맞았지요.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을 만한 짓을 했다, 이런 것은 이미 중론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권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일단,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 원폭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대부분 민간인입니다.

그리고 그 민간인 중에는,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도 섞여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민간인이 말이죠.

너무나 비극적인 일입니다.

자, 그리고 또 하나, 히로시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가사키에까지 원폭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 벽지에다 떨어뜨려 그저 위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항복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을까 말입니다.

 

사실 이 원자폭탄은 미국의 흑역사이기도 한 셈입니다. 마치 드레스덴 폭격이 영국의 흑역사인 것처럼요. 너무나 많은 죄없는 사람의 희생이 동반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의 정치인을 증오하는데요. 그것에는 바로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곧바로 패배를 인정했으면 또한 자국의 민간인 희생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어리석음이 서로 착종하면서 일어난 참사가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폭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럼 이번 히로시마의 G7을 계기로 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원폭으로 인해 돌아가시거나 피해를 입으신 우리 한국인 민간인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자폭탄이 실전에 사용된 것은 단 두 번.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 공격을 한 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8번째로 인구가 많은 산업도시이자 통신의 중심지였고,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약 35만명에 달했지요.

우라늄 235에 기반한 포신형 원자폭탄 '리틀보이'는 정상적으로 잘 작동했습니다.

폭발력은 TNT 15킬로톤급. 막강한 위력의 폭탄이 터지자 눈 깜짝할 사이 엄청난 섬광과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폭발 지점의 온도는 4천도에 육박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냥 증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어 엄청난 열풍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건물은 그냥 쓸려 나갔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사능을 가득 품은 검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낙진이 떨어졌죠.

원폭 후 히로시마 중심가 반경 7킬로미터는 모든 것들이 폐허로 변했습니다. 히로시마에서만 사망자 14만명. 군인 2만 여명, 나머지는 민간인 희생자였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인도 3만 명이나 있었습니다. 강제로 끌려와 노동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히로시마 원폭 공격에도 일제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었죠. 미국도 어리석은 결정을 합니다. 나가사키에 '팻맨'이라는 두 번째 원자폭탄을 떨군 것이죠.

4만에서 7만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 순간에 사망했습니다.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당시 연합뉴스 자료사진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당시 연합뉴스 자료사진

팻맨의 위력은 21킬로톤. 

히로시마에 터진 우라늄 재질의 리틀보이보다 이 플루토늄 기반 팻맨의 위력은 더 컸습니다. 그러나 피해는 히로시마에 비해 적었지요. 평야 지대인 히로시마와 달리 나가사키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고 산지 지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자폭탄의 위력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했지요.

그 위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즉시 항복했습니다.

 

이렇게 원폭의 위력으로 제 2차 시계대전은 끝났지만, 인류는 그 위력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원자탄은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확실한 게임체인저였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는 이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갖고 싶어하기 시작합니다.

 

이 핵무기의 위력은, 만약 어느 나라라도 자기가 파멸할 것을 각오하지 않고는 핵무기로 공격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의 균형으로 인해, 자칫 공멸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은 현재까지는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20세기 전반 세계적 대규모 전쟁에 의한 사망자는 약 1억 명에 이르는데, 핵 시대가 도래한 20세기 후반의 전사자는 2천 만명입니다. 

 

일본의 현지 동포 사회에서는 한일 정상의 공동 참배 계획을 환영하고 있다 합니다.

권준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히로시마본부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히로시마 동포사회)가 기원하고 기원했던 일이기 때문에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의 위령비를 참배한 적이 없습니다. 현직 일본 총리로서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1937∼2000)가 1999년에 참배했습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는 1970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밖에 세워졌다가 1999년 공원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곳에선 매년 8월 5일 한국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립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도 이 히로시마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인류의 평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 일본이 반드시 '평화 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글이었죠.

그분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네요.

 

우리도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 중에 죄없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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