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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과 재즈 이야기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 보내는 서한

by 석아산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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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 보내는 서한 

 

안녕하세요.
파리의 댄디이자 바스크인의 형제이기도 하였던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도 이제 벌써 68년이 지났군요. 제가 당신의 곡에 푹 빠져 지낸 것도 약 10여년, 이제는 나의 별것 아닌 호기심으로 당신을 괴롭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펜을 듭니다.
아마 제가 중학생 때였을 겁니다. 음악 수업시간에 당신의 ‘볼레로’를 들었을 때, 충격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반복적인 멜로디는 셰헤라자데의 ‘밤 이야기’에 나오는 매혹적인 주술처럼 육감적이기 그지없었으며, 그 리듬은 마음 구석구석에 차오른 油田을 퍼올리는 것처럼 펄펄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 곡은 이국의 정경을 고스란히 나의 눈앞에 드러내 보였으며, 나는 그 순간 행복의 극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음악 선생님은 중간에 당신의 곡을 꺼버렸습니다. 저는 환상에서 깨어난 것처럼 몸을 잠시 떨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요. 나는 당신 볼레로의 결말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롤러코스터와 같은 극치감의 끝이 어디였을까. 이 곡은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지, 그렇게 궁금했던 것입니다. 저는 음악선생님께 그 테잎을 빌려달라고 하였지요. 하지만 다른 수업에 쓴다고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졸라 돈을 타내어 용산까지 가서 LP판을 샀습니다. 원리상 LP판 홈이 바늘을 다루어 음을 내는 것이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LP의 바늘이 다시 판의 홈을 긁었습니다. 그렇게, 판이 망가져 더 이상 못들을 정도로 당신의 음악을 들었더랬지요. 아, 당신 곡의 결말은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천천히 쌓아올린 금자탑을 한 순간 무너뜨리는 그 도발적 결말이라니요. 그것은 오르가슴의 순간처럼, 완벽한 현훈감을 동반하였습니다. black-out.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그런 굉장한 끝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섹스 도중에 가장 들을만한 음악으로 당신의 곡이 2위를 차지했다지요.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 결말은 당신의 전매특허가 되었지요. 저 통속적인 ‘라-발스’나, ‘어릿광대의 아침노래[Alborada del Grazioso]’의 결말도 이와 비슷하지요. 어떤 경우에든지, 하이라이트의 뒤에 오는 이런 급작한 결말은 평범한 작곡가가 시도했다면 매우 어색하였을 겁니다. 당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당신은 언제나 ‘평범함’ 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요. 당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그 화제작, ‘물의 희롱’도 그래요. 이 ‘물의 희롱’을 썼을 때, 참 많은 오해를 받았지요. 특히 드뷔시의 이마쥬 1집, ‘물의 반영’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정말 많이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중에 밝힌 바 있듯, 드뷔시는 ‘물의 반영’을 훨씬 시간이 지난 뒤에 썼죠. 영향관계를 따진다면 드뷔시가 당신의 영향을 받았을 겝니다. 여기서 당신과 드뷔시의 이른바 ‘물’에 관한 이마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결정적인 차이를 언급해야겠군요. 제가 느끼는 것이지만, 드뷔시의 ‘물의 반영’은, 촉각적인 성격입니다. 물의 반영을 듣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물속에서 그에 휩쓸리고, 휘둘려 올라갔다 다시 침강하는 부침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샘물이 솟을 때 그 물덩이가 몸에 닿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당신의 ‘물의 희롱’은 아닙니다. 당신의 것은 완전히 시각적입니다. 흩뿌려지는 물방울의 모습. 물방울이 유리에 잘게 부딪치는 울림. 소노리티, 그리고 분수에 흩뿌리는 빛이 무지개를 만들어 내는 모습 등... 드뷔시의 곡과 당신의 곡은 이렇듯 차원이 다르더군요.


네, 그러고 보니까, 이 ‘물의 희롱’ 말고도, 당신은 참으로 부당하게도 선배 작곡가 드뷔시와 집요하게 비교 당했지요. 둘은 작곡 스타일도 전혀 다르거니와, 그 지향하는 바도 대척에 가까운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에게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격으로 ‘지정’ 당하였습니다. 둘이 차이가 있다면, 드뷔시는 ‘난 인상주의자가 아니라, 상징주의자이다’라고 끝까지 거부한 것에 비하여, 당신은 ‘그래, 짖을 테면 짖어라’라고 반응한 것 정도라 할까요. 어쨌든 음악사상의 명칭이 우리 후대에서는 미술사에 준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불합리한 면이기도 합니다. 라벨 선생은 그런 것에 관심 없으실 테지만요.
제가 생각하기에 분명 당신을 드뷔시와 연관시키는 것은, ‘바흐-헨델’, ‘하이든-모차르트’, ‘브람스-바그너’, ‘브루크너-말러’처럼 당대 작곡가의 쌍벽을 만드는 습관에서 나온 오유추(誤類推)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항상 호사가들은 그렇게 짝지어서 이해하려는 버릇이 있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우연하게도 당신의 작품 성향이 신기하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 군요. 하나는 뚜렷한 외연, 엷은 텍스쳐와 확고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의고전주의적 작품과, 문학적 상상력과 그로테스크한 환영에서 비롯된 낭만주의적인 작품으로요. 앞은 ‘쿠프랭의 무덤’과 ‘소나티네’가 해당되겠고, 뒤는 ‘밤의 가스파르’로 대변되겠군요. 뭐 ‘라 발스’처럼 둘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두 가지가 기본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이제는 다시 작품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당신의 초기 작품에서 볼 때, 가장 대중적인 곡은 아무래도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바느(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이겠지요. 이 곡은 카라얀 지휘의 관현악곡으로 먼저 들어 보았는데, 황녀가 금빛 찬란한 드레스를 바닥에 끌고 다니는 모습이랄까, 그런데 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그러한... 하지만 선생께선 저 제목이 단지 ‘발음이 좋아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지요. 참 알쏭달쏭한 일입니다. 너무 통속적이어서 당신께선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지요. 샤브리에의 곡을 닮았다고 자조하고 계시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현악으로 편곡하신 걸 보니 곡을 꽤 아끼고 계시기도 하였던 모양입니다.


‘거울’은 다른 곡은 몰라도, ‘알보라다’ 하나만큼은 정말로 끝내주지요. 당신은 모르시겠지만, 후에 당대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가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페인 음악이요? 알보라다 한 곡이면 됩니다.”
이 곡은 바스크 지방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닐런지요. 약동하는 리듬에 불꽃 튀기는 3도의 글리산도가 곡을 누비는 참 아슬아슬하면서도 흥미롭기 그지없는 곡이었습니다. 이미 이쯤에서 당신의 기교는 극점에 도달하였지요.
그래요. 당신은 언제나 기교의 제약을 즐겼습니다. 숙련된 서커스단원은 저글링을 할 때 눈을 가립니다. 그것에 더하여 이번에는 한 손으로 한다던가 하여 자신에게 제약을 하나 둘씩 더 추가하죠. 보통이라면 실패할 것이나, 천재는 성공합니다. 바로 그러한 곡이 ‘밤의 가스파르’이지요. 발라키레프씨가 당신의 부아를 돋우웠나요. 발라키레프보다 어려운 곡을 쓰겠다는 각오가 이 곡을 탄생시켰지요. 베르트랑의 기괴한 시에 영감을 받았다는 이 곡은 사실 낭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옹딘(물의 요정)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 물 이미지는 방울처럼 울립니다. 스카르보(악마)에서의 저음부 연타와 갑자기 폭발하는 불규칙 음형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희롱하는 작은 악마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아요. 특히 단 2도의 화음 진행은 섬찟한 악마의 초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피아노 음악 이야기만 했나요. 관현악곡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당신의 관현악법이야말로 현대 관현악의 기초가 되었지요. 특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대한 당신의 편곡판은 아직도 현대 관현악단이 많이 채택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그만큼 당신은 관현악단이 창출하는 소노리티에 관한 완벽한 이해를 가지고 계셨지요.
역시 관현악곡을 언급하자면 스페인 랩소디를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프렐류드, 말라게냐, 하바네라, 페리아로 이루어진 이 곡은 스페인의 정조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곡의 하바네라는 당신이 어렸을 때 쓴 작품을 다시 도입한 것이지요. 선생께선 ‘자전 소묘’에서 이 곡이야말로 후대의 자신을 능가할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에는, 이 스페인 랩소디에서 앞의 세 곡은 페리아를 위한 도입이자 전주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페리아!!! 이것은 스페인에서도 그라나다라든가 알함브라 궁전처럼, 이슬람의 정조를 간직하고 있는 곡이었습니다. 저는 이 곡을 듣고 놀랐습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같은 데서나 나올 법한 떠들썩한 아랍풍의 시장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었으니까요. 13세기 맘루크 왕조의 찬연한 번영의 거리를 내 스스로 질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 떠들썩한 축제의 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감동이라니요.


관현악곡의 백미는 역시 ‘라 발스’일 겁니다. 예전에(저한텐 예전이지만, 당신에게는 먼 훗날이지요) 미국 뉴욕 필하모닉을 이끄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에서 이 라 발스를 처음 들었지요. 그 때 번스타인은 이 곡을 침이 마르게 칭찬하였지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이 곡은 청소년에게 들려주기에는 약간의 음탕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첫 도입 부분의 낮은 음의 유니즌은 수많은 사교계 여인들이 있는 하렘의 발을 걷는 것과 같은 묘한 성적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니까요. 그리고 그 터질 듯한 하이라이트의 음형을 어떻게 감당하란 말씀입니까. 불어로 라 발스는 왈츠의 뜻이지요. 당신의 왈츠는 모든 청중을 하나로 뒤섞어 버립니다. 또 그런 현기증 속에서 마지막에 곡은 한바탕 일그러진 후 막을 내리는 것이지요. 당신의 특기 아니겠습니까.


이제 끝으로 당신의 위대한 협주곡 두 곡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의 장르는 당신의 선대에도 엄청나게 많은, 정말 하늘의 별과 같을 정도로 많은 명곡들이 작곡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같은 단독의 경지를 이루지는 못하였죠. 저 유명한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 폴이 이 곡을 의뢰했을 때 당신은 과연 어떠한 심정이었을까요. 스트라빈스키조차 말이 안된다며 포기한 일인데요. 그렇습니다. 피아노는 한 손으로 연주하면 피아노다운 맛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제약이 당신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을 겁니다.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라... ‘뭐 이전에 발라키레프보다 어려운 곡도 써봤고, 똑같은 멜로디와 악기의 음색 변화만으로 작곡한 볼레로도 있었는데...까짓거 못할 것이 뭐가 있느냐’하는 승부사의 기질이 발동하셨겠죠. 하지만 이러한 승부사의 기질은 기적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 놓습니다.
선생께선 이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 ‘musae mixtatie'라고 말하셨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여 음악의 종합 선물세트처럼, 온갖 요소가 적재 적소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1,2,3 악장이 연결되어 있고 카덴차도 직접 정성스레 써 넣으셨죠.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 3악장의 카덴차일 겁니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음형에 더하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련된 아름다움의 멜로디... 들을수록 찬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선생께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제 줄여야겠네요. 당신은 철저한 절차탁마의 의지를 갖춘, 정말 프로페셔널한 예술가상으로 제 머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대충 대충 청중의 귀를 속이려는 음악을 작곡하는 인간들과는 질적으로 다르지요. 한마디로 현대의 안이한 딜레땅띠즘에 대한 반성의 지침으로 선생의 음악은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그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이미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지만요.


당신의 寡作 취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곡도 그 수준에 있어서 빠지는 것이 없을 정도로 질 높은 곡을 쓴 사실을 보건대, 당신은 아마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기검열이 철저했다고 생각됩니다. 라벨 선생의 ‘자전 소묘’는 자신의 예술에 관하여 객관적이고도 치밀한 평을 한 것으로, 지금도 내 머리맡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성경과도 같이 나에게는 소중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전 소묘와 함께 내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은 당신이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입니다. 당신은 독신이셨고, 고양이를 무척 아껴 많은 고양이를 길렀죠. 사실 탁마의 치밀함과 자기검열의 철저함을 볼 때, 당신도 고양이가 매시간 몸을 핥는 것처럼, 그런 자기 점검의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이런 전무후무의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고요.


말이 길었습니다. 선생께서 서거하신지 이제 70년이 가까이 됩니다. 그래도 당신의 음악은 제 곁에서 살아 숨쉽니다. 음악이 음악 이상이기를 기대하던 청중들에게, 음악이 음악 이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그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보여주었던 당신의 존재가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OePeT12EJ14 

Ravel, Alborada del grazi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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