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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세상

작품에 지문 묻었으니 2억 4천만 물어내라!

by 석아산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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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 좋아하는 미니멀리스트 도널드 저드의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은 아크릴을 소재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먼지나 지문 등이 묻기가 쉽죠.

 

그런데, 지문이 묻었다고, 2억 4천 만원을 청구한다면, 그래도 내야 할까요? 혹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횡포는 아닐까요? 한번 자초지종을 알아 보시죠!

 

한국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대형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1960~80년대 미국 미니멀리즘을 이끈 거장 도널드 저드의 조형물을 판매 목적으로 보관했는데, 미지의 지문이 묻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최근 도널드 저드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배상소송을 당했다고 하네요.

 

지난 주말 아트포럼 등의 서구 온,오프라인 미술 매체들은 저드 재단이 미국 뉴욕 맨해튼 법원에 국제 갤러리와 티나킴 갤러리를 피고로 작품 훼손 책임을 물어 17만 달러(한화 2억 4천만원)의 배상소송을 냈다는 사실을 속보로 내보냈습니다.

 

두 화랑이 2015년 재단에게서 작가가 1991년 만든 알루미늄제 수직 서랍장 모양의 채색 조형물 <무제>의 판매를 위탁받아 보관한 뒤 2018년 돌려줬는데, 재단 관계자들이 살펴보니 지문 얼룩 자국이 발견되었고 그 부분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되어 이후 판매할 수 없을 만큼의 피해를 봤다는 주장입니다.

 

재단은 작품값으로 당시 책정되었던 85만 달러 중 80%인 68만 달러는 보험사로부터 받았지만, 나머지 17만 달러는 화랑이 보상액으로 내야 하며 여기에 더해 별도의 이자와 손해배상금까지 따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팔아주겠다고 맡았다가 부실 보관이 빌미가 되어 고소를 당한 것이지요.

 

 

 

오오... 저 위가 2014년 당시 전시 모습인데요... 뭔가 사람이 왔다갔다하며 실수로라도 만질 수 있는 상황인 거 같기는 하네요.

 

어쨌든 이 사건은 참 미묘합니다.

일단 미술계, 특히 화랑계에서는 작품 보관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을 합니다. 보존 상태가 작품 가격의 근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화랑의 한 중견 화상은, "외국 대가들의 그림이나 조형물의 경우 누가 손대고 지문을 묻히는 것은 순식간이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도널드 저드는 평생 단정하게 색찰한 금속제 상자 큐브를 배열하고 붙이고 확대하는 데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노력을 쏟아부은 정통 미니멀리스트였습니다. 그에게 상자의 채색된 표면은 단순한 외면이 아니라, 미세한 화폭처럼 완전한 상태에서 보존, 관리해야 하는 완벽의 세계였습니다.

저드는 서랍장을 연상시키는 금속제 상자를 그의 문화적 영지로 일컬어지는 텍사스주 소도시 마파의 거대 전시장에 늘어놓은 거대 규모의 미니멀한 설치 작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작품 구상에서 제작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완벽성을 추구했고, 금속 상자의 표면을 미세한 회화적 표면으로 간주했습니다. 먼지가 앉는 부분은 미세한 털로 터는 것 외엔 닦는 것이나 어떤 방식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상태의 표면이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원칙은 작가가 사망한 1996년 이후에도 재단에서 철칙처럼 받들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전세계 화랑에 대여하는 저드의 작품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이물질, 풍화, 습기 등을 타지 않는 보존 조건 아래서 관리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길 경우 보상 협상과 소송 외에 다른 타협점이 사실상 막혀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거 이제 무서워서 대여하겠나 싶네요...

 

그런데 이것은 미술계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소송이라고 합니다.

시장에서는 웬만하면 화랑의 지명도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영향을 감안해 비밀리에 소송을 진행한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지문 소송이 불거진 것이죠.

화랑이 오랫동안 팔아치우지 못하고 갖고 있다가 모종의 사건이나 경위로 감정이 틀어지지 않았나 하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갤러리가 사들이든, 재단이 거액의 보상을 비공개로 받든 협의를 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단순한 훼손 이상의 복잡한 우여곡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작품에 손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작가의 대응에 따라 작품의 평가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해프닝 등으로 작품이 훼손되어도,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이렇게 완벽을 추구하는 미술가인 도널드 저드의 경우는, 조그마한 흠집 하나라도 작품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취급됩니다. 게다가 작가가 이미 사망했으니, 이런 기조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죠.

 

여러모로 까다롭고 오묘한 예술의 세계, 그 일면을 언뜻 엿보게 되는 사건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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