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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책리뷰)

[책리뷰]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by 석아산 2020.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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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성'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전쟁을 여성이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없죠.

하지만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다름아닌 여성입니다.

 

그런데 여기,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참전 용사로서의 여성을 다룬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의, 타의로 참전하여 싸울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수집한 논픽션 문학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입니다.

 

알렉시예비치는, 이른바 '목소리 소설'의 창시자입니다. 작가 자신이 허구를 창작하는 것이 아닌, 목격자의 증언을 그대로 옮겨 적는 형식입니다. 구술 문학에 가깝다고 해야겠지요.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선언하고 직접 조사를 다녔을 때, 많은 사람이 비아냥거렸다고 합니다. 특히 남자들이요.

 

"여성이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아느냐." 라는 성차별적 발언은 약과였다고 합니다.

참전한 여성 군인의 남편은 이런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승리했다. 내 아내는 질질 짜는 이야기, 감성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이야기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작가는 바로 그 남성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승리의 이야기, 그 뒤에 숨은 인간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녹음기를 들고 참전 여군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많은 참전 여성 군인들이 그녀와 인터뷰를 하는 것을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잊고 싶어서.

또는 가족에게 자신의 과거를 알리기 싫어서, 등등... 

 

그러나 집요하게(?) 자신의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작가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남자들의 전쟁 영웅담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녀들은 전쟁 중에도 아름다운 꽃을 보면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어떤 군의관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독일군의 기관총 소리가 따다다다... 울리는 걸 들으며 생각했어. 밀 잎사귀의 속삭임을 나는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 다정한 속삭임을..."

 

그리고 전쟁을 하는 가운데도, 왜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지 고민했지요.

 

여성들에게서 '인간애'를 완전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증언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류의 거대한 어리석음 속에서 그래도 자신의 삶과 감정을 지키려고 했던 숭고한 여성 전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네요^^ 

 


기억에 남는 구절 

 

-부상 당했어요...

정찰대원들 중에 나이 지긋한 의사보조가 와서 물었어.

-부상 당한 데가 어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피가...

그러자 그가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설명해줬어.

 

그날 그녀는 초경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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