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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책리뷰)

[책 리뷰]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노벨상 수상작

by 석아산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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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주인공의 친구인 한 남자가 발가벗은 상태로, 머리에 붉은 물감을 칠하고 항문에 오이를 꽂은 채 자살합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충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고, 친구가 자살하고, 누이도 그렇게 죽어, 자신이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낍니다.

 

주인공의 동생 다카시는 전위적인 연극단의 일원으로, 미국에서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형 미츠사부로에게 고향인 시코쿠로 돌아가 새 삶을 꾸려나가자고 하죠. 

“그렇다면 형, 그것들을 떨쳐 버리고 삶의 자리로 올라와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의 냄새가 형한테 옮겨갈 거야.”

 

이렇게 그들은 시코쿠 고향 마을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동생은 자기 집안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진즉부터 알고 있었고, 이 비밀을 캐보려고 합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동생을 죽이고 마을의 대봉기를 안정시켰대. 그리고 동생의 허벅지 살을 한 점 먹었대. 그건 동생이 일으킨 대봉기에 자기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을 관리한테 증명하기 위해서였대.”

 

그들의 고향 시코쿠는, 아주 섬뜩한 조상의 얼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울창한 숲이 있는 분지로, 무사들에게 쫓긴 그들의 조상이 도망쳐와 정착했습니다. 

 

 

동생은 이렇게 고향으로 회귀했는데도, 오히려 자신이 이 고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실토합니다.

"나야 말로 업루티드(uprooted)야. 나는 이제 여기서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야 하고, 당연히 그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껴. 어떤 행동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저 행동이 필요하다는 예감만이 강해지거든. 아무튼 태어난 장소에 돌아왔다고 해서 그곳에 자신의 뿌리가 온전히 묻혀 있지는 않아."

이 업루티드(up-rooted), 즉 뿌리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단어에 담긴 문제의식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제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형제들은 이 고향에서, 증조부들의 행적을 재탐구합니다. 그들의 증조부의 형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으로, 집을 지을 때 농민 봉기를 예상하여 바리케이트식으로 지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형에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던 증조부는, 오히려 농민 편에 가담하여 봉기를 선도하지요.

 

이런 형제간의 갈등은 이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의 동생 다카시도, 동생쪽 증조부에게 저항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부단히도 투사하려고 합니다. 주인공 동생에게 동생쪽 증조부는 영웅인 것이지요.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다카시의 생각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우려합니다. 이렇게 주인공과 동생의 갈등 양상도 이 소설의 핵심이 되는 플롯 중 하나입니다.

 

이렇듯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기인이거나, 광인입니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의 청년들도 무력감과 자본주의의 공포에 짓눌려 있습니다. 마을에 거대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수퍼마켓이 들어오고, 이 마을 청년들의 양계 사업은 큰 위협을 받습니다.

이 마을 청년들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수퍼마켓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지요.

 

놀랍게도 이 수퍼마켓은, 이 마을 바깥에 살던 아웃사이더 조선인, '수퍼마켓 천황'이라는 인물이 세운 상점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 조선인 사장을 아이러니하게도 '천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비굴하게 이 수퍼마켓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지요.

이 수퍼마켓은 최신의 미국식 광고와, 경품 등을 미끼로 순진한 시골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렇게 수퍼마켓과 이 고향 주민들 사이에는 묘한 위화감이 있으며, 이런 '말기적 증상'에 대해 주인공은 걱정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동생 다카시는 걱정에만 그치지 않고, 뭔가 행동을 하려고 하죠. 

 

그는 마을의 강물이 불어 아이가 빠지는 위험에 처하자, 자신을 따르는 청년들을 데리고 가서 아이를 구합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을 조직하여, 마을의 수퍼마켓에 대항하는 풋볼 팀을 만들지요. 이 풋볼팀은 증조부의 동생이 혁명군을 이끈 것에 대한 오마주와 같습니다.

 

주인공의 동생 다카시는 이렇게 자신을 따르는 청년단을 선동하여, 그들이 자신이 만엔 원년(1860)에 봉기를 일으킨 농민군과 동일시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눈이 오면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해,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인공은 이런 현상이 이 지역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라며 충격을 받지만, 다카시는 오히려 그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날, 수퍼마켓에서 일이 발생합니다. 수퍼마켓이 신년을 맞아 무료 경품 행사를 하는데, 다카시가 그 무료 코너에 몰래 술을 반입한 것이지요. 수퍼마켓은 일대 혼란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다음날도 청년단은 수퍼마켓에 약탈을 하러 가지요.

 

주인공인 형은 이런 다카시의 행동에 대해서 우려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인들이, 저 수퍼마켓은 조선인이 세운 것이니 당해도 싸다고 하는 말에 대해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이렇게 다카시는 수퍼마켓을 점령하고, 자신이 그 증조부 동생이 된 것마냥 행세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위세도 얼마 가지 못하고, 청년단은 와해되기 시작하지요.

 

동생 다카시는 결국 자기 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게된 다카시는, 마을 여자를 강간한 뒤 죽여버리지요. 하지만, 형인 주인공은 그것이 다카시가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카시는 자기 처벌을 위해, 이런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카시가 자기 처벌을 하려는 더욱 끔찍한 이유가 있었죠...(이것은 하도 충격적이라, 제가 입에 담지는 못하겠네요. 직접 작품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결국 다카시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 '만엔 원년의 풋볼'은, 패망한 일본이 전례없는 자본주의의 시대를 맞이함으로써 보이는 도덕의 붕괴를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평화헌법의 수호자로서, 전쟁을 극렬히 반대하는 대표적인 일본의 지식인입니다. 그가 볼 때, 지난 전쟁은 마치 다카시가 품은 열렬한 환상의 잘못된 발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도덕의 붕괴는, 결국 일본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만들지요. 이 작품은 이렇듯 일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끝으로 작가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소설 속 문장을 소개하며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원폭 공격 때 히로시마에서는 제일 먼저 교외로 도주한 무리가 소의 무리였지만, 더 거대한 핵전쟁이 문명국의 여러 도시들을 파괴할 때 동물원의 코끼리에게 도주의 자유가 있을까? 또, 이 대단한 부피의 동물을 수용하기 위한 핵전쟁용 방공호를 준비하는 일이 있을까? 아마도 그 전쟁 뒤에는 모든 동물원의 코끼리가 죽어 없어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만약 또다시 도시가 부흥할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어느 바닷가에 핵 방사능으로 파괴된 기형의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모여 아프리카 초원으로 코끼리를 잡으러가는 대표를 전송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할까? 그때야말로 도대체 인간에게는 아직 착한 구석이 남아 있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떤 힌트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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