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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읽기(책리뷰)

[책 리뷰] 사고의 본질

by 석아산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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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것을 곰곰이 뜯어보면, 우리는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단,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라는 원래의 경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호의를 계속 베풀면, 호의를 받는 대상이 나중에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마치 권리처럼 요구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를 비슷한 발음의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로 전환하는 것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우선 둘리라는 만화의 주제가에서, '호이! 호이! 둘리는~ 영원한 내 친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호이'가 '호의'와 발음이 비슷하지요. 그리고 '권리'를 발음나는 대로 쓰면 '궐리', 그것이 '둘리'와 운이 맞습니다.

 

 

이렇게 해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라는 구절은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라는 구절로 변환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둘리'는 일종의 공룡 캐릭터로서, 인간보다 다소 하위에 있는 생물입니다. 따라서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역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의 변용 버전으로서 대치가 가능한, 하나의 훌륭한 경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능력을, 이 책에서는 유추 능력의 일종으로 봅니다.

이 유추 능력은 사실 제대로 조명되어 온 일이 없습니다. 근대의 유명한 사상가 홉스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홉스는 명확한 사고를 매우 강조한 인물로 꼽힙니다. 그는 '유추'나 '비유'와 같은 어법에 대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내비쳤습니다. 자, 다음의 글을 한번 보실까요.

 

"인간 정신의 빛은 명료한 단어이지만, 먼저 모호성으로부터 분간되고 정화된 정확한 정의에 의해 명료해진다. (중략) 비유 그리고 분별 없고 모호한 단어는 도깨비불과 같으며, 이것을 이용한 추론은 수없는 부조리 속에서 헤매는 일이다."

 

자, 여러분, 홉스의, '유추와 비유에 대한 분노',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저 문장을 한번 자세히 살펴 보고, 뜯어 씹어봅시다.

 

1) "인간 정신의 빛" -> 인간 정신에 빛이라는 것이 실재하나요? 이것은 현명한 인간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빛'이라는 비유를 끌어오는 표현입니다.

 

2) 비유, 그리고 분별없는 모호한 단어는 도깨비불과 같다.

->  홉스는 비유와 모호한 단어를 비판하기 위해서, '도깨비불'이라는 비유를 끌어오고 있습니다.

 

3) 이것을 이용한 추론은 수없는 부조리 속에서 헤매는 일이다.

-> 부조리 속에서 '헤맨다'고요? 이것 역시 비유입니다.

 

자, 이제 홉스가 비유를 비웃으면서도, 사실 그것 없이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렇듯 근대의 계몽주의자나 과학자들은, 일상어에서 자주 보이는 비유적 표현과 유추 표현이 정확한 사고를 방해한다며 그것을 줄곧 폄훼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만약 우리가 비유 표현이 없으면, 어떤 것을 개념화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에 '한국어의 공간 개념에서 비롯된 시간 표현'을 연구하고, 그것을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 표현'만큼, 우리의 유추 능력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시간이 길다', '시간이 빠르다', '시간이 짧다', '빠른 시간 안에', '못 보는 사이에'는 사실 모두 공간 표현에서 유추한 시간 표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시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없습니다. 시간을 '시간 만의 표현'으로 개념화하지도 못하지요. 대부분의 시간 개념은, 공간 개념에 기대고 있는 '유추'입니다.

 

이 책은 이렇듯 우리의 의식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지어 눈치 채지 못하는 인간의 '유추 능력'에 대해서 다룹니다. 유추란 것은, 비슷한 것을 범주화하여 사고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관계를 다른 비슷한 것에 적용하는 일이지요.

 

이 책에서는 이러한 유추를 단어, 구절, 속담, 우화, 과학 용어 등 전반적인 범주에서 다룹니다. 이 책은 우리 사고의 한 측면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탁월한 해설서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이상 석아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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