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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세상

테슬라와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by 석아산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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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담이고, 투자 권유 포스팅이 아닙니다.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투자 철학을 논하는 것이고, 제 생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투자와 투기의 구별을 논하는 자리에서 늘 등장하는 일화는,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에 대한 것입니다.

 

옛날, 17세기 정도에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 하나의 가격이(그 튤립 품종은 셈퍼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저택 한 채 정도의 값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튤립이 놓여 있는 경매장에서 관리인이 튤립 구근을 베어 먹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입찰에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래서 이후로 튤립 버블은 꺼졌다고 알려져 있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 튤립 사건을 인간이 투기에 '눈이 먼' 어리석은 사건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일면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가치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거죠.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20세기와 21세기 최고의 자산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는 점잖게 말하면 '미국의 신용'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양각화를 음각화로써 치환해 이야기하자면, 달러의 패권은 '미국은 당분간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희망 때문에 유지됩니다.

 

이 '당분간 망하지 않을 것임'이 바로 투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국 내의 위기 등을 통화량 증가(양적 완화)를 통해서 타개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런 통화의 유동성이 다른 나라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이기주의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고 있지요.

코로나19 때에 막대한 자금을 풀어서 내부 경기를 억지로 진작시키는 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통화량 팽창이 결국 제 3국에는 치명적이지요.

우리나라 청년들이 영끌을 하는 것도 이런 미국의 패착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시장은 양각화와 음각화의 두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긍정적으로 보자면 '어떤 국가, 산업, 종목에 대한 희망'이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적어도 망하지 않음', 바로 이런 것에 투자자들은 베팅을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테슬라와 비트코인 두 가지에만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투기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성의 문제이죠)

 

테슬라에 베팅하는 것에도 양가 감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테슬라가 그리는 긍정적인 미래입니다.

저는 머스크가 가진 비전 중에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그의 가치관을 너무나 높게 평가합니다.

 

그가 전기차인 테슬라의 창립자로서, 단순히 친환경적인 맥락만을 강조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테슬라가 자율주행에 목을 메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돈벌이가 되어서라기보다는, 자율주행의 시간 동안 다른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뭐 무슨 짓을 하든, 동영상을 보든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든, 그것이 운전보다는 생산적이라는 그의 믿음 덕분입니다. 저는 이렇게 그가 '자신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남의 시간'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 너무나 좋습니다.

 

진정 창의적인 사람들은, 돈을 뺏기는 것보다 시간을 뺏기는 것이 더 싫은 법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에게, 100달러를 줄 테니 한 시간 동안 만이라도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했다면, 고흐는 그것에 동의했을까요?

 

아마 한 푼도 받지 않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택했을 것입니다. 창의적인 인간, 21세기 인간은 돈보다 시간이 소중합니다.

 

이런 비전은 그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를 잇는 지하터널 '볼트'를 완성하려고 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는 이런 시설을 통해, 인간의 '노동'을 해방하려는 것이 아닌, '시간'을 해방하려고 합니다.

 

그 시간을 얼마나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머스크는 다만 그 배경 시간이라도 확보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쓰는가에 앞서, 그 '시간'을 확보해 주려는 것이죠.

 

이것에 머스크의 혁명성이 있습니다.

그가 하려는 모든 산업, 인공지능 로봇인 옵티머스, 스타링크 등이 다 이런 '시간의 해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에게 '시간 인프라'를 확보해 주려는 것이죠. 그 캔버스 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색을 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머스크가 제안하는 건 일견 섬뜩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드넓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 엄청난 뻘짓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을 겁내지 않는 거죠. 이런 면에서 일론 머스크는 낙관주의 괴물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 제가 투자하는 것은 비트코인입니다.

 

전 비트코인의 수학적 개념 등을 여러 문헌을 통해 연구해 왔습니다. 너무나 전문적인 내용이라, 묻고 물어 알아보았는데요.

이것은 지금 암호체계인 '공개키 암호 시스템'에 맞먹는 기술적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적 혁명은 '인식론적 혁명'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70년대 해커들이 지녔던, 정보 공개의 투명성.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고 획득하고 검증하는 회계 장부의 공유.

 

정말 이런 것은 '히피적'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산원장의 '개념'을 인터넷과 정보 공유의 기술적 메커니즘으로 실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비밀스러운 인물, '나카모토 사토시'는 하나의 논문을 통해 그 기술적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내역을 공개하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검증하는 수학적 시스템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하나의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시민 같은 작가는 이 비트코인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늘 '통화시스템은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같은 인증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만 주장합니다.

 

중앙은행이 검증하는 독점적인 시스템, 그리고 그 하부적인 중앙집권적 은행 시스템의 탐욕, 이런 폐해는 고스란히 그 이용자들에게 전가됩니다. 울며 겨자먹기이죠.

 

그리고 중앙은행은 국가의 '지속 가능성'에 온전히 기대고 있습니다. 한국, 절대 망하지 않을 거다, 라는 기대가 우리 돈을 은행에 맡기는 하나의 근거이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따라서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마비되었을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보십시오. 당장 러시아에서 외화 입금이나 송금을 금지하니까, 비트코인이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인터넷만 되면, 비트코인을 개인지갑에서 다른 지갑으로 이전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 비트코인이 그런 극한의 지대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놀라운 일이죠. 심지어 달러조차 기능하지 못하는 곳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이것이 바로 화폐의 본질입니다.

 

화폐는 양각화로 말하자면 '기대와 희망'이고. 음각화로 말하자면 '당장 기대야 할 곳'의 속성을 지닙니다. 비트코인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트코인은 적어도 투자의 대상, 그보다 못하다면 최소 리스크 헷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재밌는 건, 여기서 또 일론 머스크가 등장하는데요.

그가 스타링크를 통해 위성을 몇 만기나 쏘아올려 심지어 북극남극에서조차 인터넷을 하게 하려는 이유는, 이 비트코인과도 모종의 연관성을 지닙니다.

 

비트코인이 어디서든 유통되려면, 적어도 인터넷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북극에서도 인터넷이 된다면, 이런 암호화폐들이 더 큰 빛을 발하겠죠.

 

일론 머스크는 우리의 생각을 벌써 두 세 걸음 앞서 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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