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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세상

하수관 파다가 "평생 처음 본 유물" 나와... 보물 한 가득 담긴 솥단지

by 석아산 202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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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발굴 당시 철솥 내부의 불교 공양구들. 이들 중 위에 보이는 향로 등 20여점은 수습돼 밖으로 꺼내어졌다. 춘추문화재연구원 제공
지난달 발굴 당시 철솥 내부의 불교 공양구들. 이들 중 위에 보이는 향로 등 20여점은 수습돼 밖으로 꺼내어졌다. 춘추문화재연구원 제공

어제 경주에서 발견된 한 공주의 무덤에 대해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오늘도 경주에서 발견된 아주 신기한 유물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정말 경주는 우리나라 천년 고도답게 엄청난 유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네요. 대단합니다. 경주 전체가 우리나라의 보물이네요.

 

그럼 소식 보시지요. 

도로 옆 하수관을 팠다가 옛날의 절집 보물 단지를 찾았습니다.

 

아기 몸체보다 큰 쇠솥단지 안에, 11~12세기 고려의 장인들이 정성껏 제작한 향로와 촛대, 금강저 등 최고 수준의 불교 제례용 공예품이 가득 들어 있었던 건데요.

신라 고도 경주 시내에 있는 옛 사찰인 흥륜사터 부근에서 지난달 초 벌어진 일입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사정동에 있는 국가사적인 '흥륜사지' 서쪽의 도로가에서 금속공양구들이 들어간 철솥 등 청동 공양구 쉰 네점이 발견되었다고 5일 밝혔습니다.

 

유물이 나온 장소는 1980년대 지어진 현재의 흥륜사가 자리한 곳으로부터 약 22미터 떨어진 지점입니다.

철솥 단지를 파낸 사람들은 사설 발굴 조사기관인 춘추문화재연구원 조사원들입니다. 

 

조사원들은 지난달 초 도로가를 발굴하기 위해 1미터 정도 발굴갱을 파고 들어가다가 이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앞서 경주시 쪽은 인근 남천에서 나온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민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2~3월 금성로 도로변 지하에 하수관로를 설치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굴착 공사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펴보다 통일신라 유적층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고 건의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솥안에서 아직 꺼내지 못한 유물들. 향로뚜껑과 밀교 의식도구인 금강저 등이 흙덩이, 녹과 엉켜있다.
솥안에서 아직 꺼내지 못한 유물들. 향로뚜껑과 밀교 의식도구인 금강저 등이 흙덩이, 녹과 엉켜있다.

 

공양구를 담은 철솥의 크기는 지름 약 65센티미터, 높이 62센티미터 정도입니다.

안에 청동 향로와 촛대, 밀교 의식에 쓰는 제례도구인 금강저, 물을 따르는 용기 등이 빽빽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육안으로 확인된 유물은 54점이었는데요. 이들 가운데 향로와 촛대 등 26점 정도만 꺼내어 놓았습니다. 

 

금강저와 향로뚜껑을 비롯한 나머지 유물들은 솥 내부에서 흙덩이나 녹 등과 엉켜 있어 수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유물들이 확인될 것으로 보입니다.

수습된 공양구들은 뛰어난 예술성을 보이고, 상당한 물량이 나와 고려 금속공예사 연구에 요긴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향로들은 주둥이나 몸체의 기형이 각이 진 고려 초기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촛대에 쓰이는 촛농받침은 화려한 꽃잎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런 모양새는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얼핏 아령을 떠올리게 하는 금강저는 경주권에서는 처음 확인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

촛농받침을 끼운 고려시대 촛대. 뾰족한 꽃잎 모양이 특징인 촛농받침은 이번에 처음 출현한 고려시대의 공예 디자인이다
촛농받침을 끼운 고려시대 촛대. 뾰족한 꽃잎 모양이 특징인 촛농받침은 이번에 처음 출현한 고려시대의 공예 디자인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시관에 나온 경주 사정동 흥륜사지 출토 철솥의 불교 공양구 유물들. 고려초기인 11세기~12세기로 편년되는 향로와 촛대, 촛농받침이 보인다. 아래 작은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인근 조사구역의 교란된 지층에서 별개로 나온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시관에 나온 경주 사정동 흥륜사지 출토 철솥의 불교 공양구 유물들. 고려초기인 11세기~12세기로 편년되는 향로와 촛대, 촛농받침이 보인다. 아래 작은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인근 조사구역의 교란된 지층에서 별개로 나온 것이다.

보물들이 솥에 들어 있는 이유는 왜일까요.

전문가들은 급박한 전란이나 재난, 화재 등이 일어났을 때 절집의 귀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솥 안에 묻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물을 '퇴장 유물'이라고 하는데요. 국내 유적에 간간히 있다고 합니다. 경남 창녕의 말흘리 절터 유적이나 충북 청주 사뇌사터 등에서 종종 퇴장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직은 추정 단계에 있으나, 철솥에 유물을 넣고 묻은 역사적 배경으로 13세기 경주 일대까지 들어왔던 몽골군의 침략이 우선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철솥이 나온 사정동의 흥륜사지는 일제강점기에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사람얼굴 무늬 수막새 기와가 나온 곳으로 전해집니다.

삼국유사 등의 사서를 보면 흥륜사는 법흥왕~진흥황 시기에 승려 아도에 의해 큰 절로 세워졌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장소에서 흥륜사임을 완전히 입증할 만한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춘추문화재연구원의 ‘흥륜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왓장들. ‘영묘사’란 절집 이름을 초서풍으로 새긴 명문기와와 명문의 탁본도 보인다.
춘추문화재연구원의 ‘흥륜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왓장들. ‘영묘사’란 절집 이름을 초서풍으로 새긴 명문기와와 명문의 탁본도 보인다.

그 대신 7세기 선덕여왕 때 창건되어 조각대가 양지 스님이 활동한 명찰인 영묘사의 명칭을 새긴 기왓장이 70년대부터 올해까지 줄곧 출토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학계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사실상 영묘사 터로 지목해 왔습니다.

실제 흥륜사 터는 지난 2009년 '흥(興)' 자가 새겨진 신라의 수키와 조각이 출토된 북쪽 경주공고 자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김동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이번에 발견된 철솥 안의 불교공양구 유물들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옛 절의 명문이 드러난다면 흥륜사 위치를 둘러싼 혼선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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